심상극(Imagery Theatre)  제작 결과에 대해



공연 사진


몇 개의 후기

영상, 무대, 조명 등의 요소는 무난무난했다.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공연 때 배우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을 들으면서 지면에 있는 상태를 역추적해 상상했을 때,
창작 과정에서 그 지면을 보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을을 선택했겠거니 싶었음.
세 요소가 각자 고유한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어 서로 부딪히거나 섞이면서 상승을 일으키기보다는 너무 매끄럽게 잘 통합되었다는 느낌.
한 명이 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이것이 셋의 호흡이 잘 맞는다는 의미에선 좋을 것 같긴 함.
그러나 너무 매끄러워서 지면을 토대로 뭔가 다른게 자라나기보다는 처음 글의 작성과 차후의 작업 프로세스가 엄청 잘 통제되어 있었다? 는 느낌!
초기 작업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모든 작업이 무조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작업에선 좀 더 부대끼는 것을 걱정않고
시도하고 정리하고 합친다면 더 재밌는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 켠에 있음.



배우가 몇몇 장면에선 빠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은 여러 번 들은 말이었다.)
수만층의 엘리베이터에서 수납되는 층과 공간과 사건에 대한 사유는 진짜 좀 재밌는거 같아


초반부의 장면전환이 많은데 비하여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어지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이미지들이었는데 미처 다 감각하지 못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것은 꿈 초반부의 전환되는 느낌을 살리고자 하셨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지를 앞세운 극이라는 설명을 듣고 봤는데, 상상한 것보다 이미지가 계속해서 배경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추상적인 이미지들의 사용임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는 점이 묘한 감각을 주었습니다.
수영장씬 자동차씬등에서 무대의 이미지는 추상적이고 몽환적이었지만
마치 관객이 그 장소에 가 있는듯한(추상적인 바로 그 장소)착각을 주었습니다.
배우의 이미지와 말하기 방식도 극과 너무 잘 맞아 떨어져 즐겁게 관람하였습니다.


시노그래피 집단이라 화려한(?) 무대미술을 기대했는데 작에 비중이 높아 기대했던 포인트가 엇나갔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연출능력이 돋보임. 텍스트가 너무 많은데 장면 전환 사이에 여백이 없으니 약간 피로도가 있었고,,
자막이나 녹음 등 다른 방식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배우의 대사 외에 모두 tts로 연출한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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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고민주 :

 확실히 심상극을 제작하기로 하며 정한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꿈을 무대 위로 불러온다는 컨셉에 집중하여 무대-영상-조명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최대한 꿈의 방식을 가져오는 방법을 택했으나,
이것이 관객 내면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기보다 텍스트를 표현하는 어떤 기법으로 가닿는다는 사실을 극장에서 깨달았다.  
프로젝트 기획 이전 극작이 선행되기도 했고, 조명과 음향을 하는 한 명의 개인이 쓴 작품이다보니 다양한 요소가 총체되어 사용되어야 하는 시노그래피적 연출이 자유로운 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무대 - 조명 - 영상 - 음향이 딱 달라붙어 어떤 기획을 먼저 상상하고, 그 위에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다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때, 극 밖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작업자 이상의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는 어떤 주제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서사의 전달과 시노그래피적 재해석은 이 공연을 만드는 내내 서로 상충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다음에도 텍스트가 선행된다면 시노그래피를 통해 최대한 그 텍스트를 분해-재해석해야 할 것이고, 텍스트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확장되는 의미를 찾아나가야 한다.

몇몇  장면에서는 배우가 빠져 관객이 온전히 이미지를 느낄 시간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은 말인데, 시점을 제한할 수 없는 공연예술에서 마치 영화처럼 배우 또한 그 이미지 안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습 내내 찾았지만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김윤지:

무대를 구성할 땐 조명-영상-연기의 호흡이 더 즉각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위해 판을 깔아준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극이 발생할 공간 속에 생경한 하나의 존재감은 올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인물의 이동 맥락은 [엘리베이터가 물리적으로 중력장을 거스를 수 있는 상승-하강의 힘과 '신체'라는 축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포에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이러한 개념을 관통할 수 있는 장치 하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의지의 발현을 억누르는, 불가항력적 중압감이 스미는 장면에 기다랗고 무게감 있는 '기둥'이라는 요소를 배치함으로써 이 컨셉을 표현하고자 했고, 위, 아래- 양옆으로 공간 구조를 분리하며 움직임과 빛, 그림자 활용에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싶었다.

그리드 끝까지 기둥이 이어지면 관객이 머리 위 허공 혹은 그 아래를 상상하도록 열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사실 너무나 분명히 보이는 영상의 엣지와 극장의 많은 요소들이 시야에 잘 들어오는 좁은 크기의 극장에서 그런 환상을 발생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위아래로 맨 위에서부터 바닥 끝까지 내리꽂는 수직의 구조물이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위압감처럼 작동해 주어서 (극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구상 단계에서 설명했던 '공간의 확장성'이 생겼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공간 속에 '내리꽂아' 넣어 이 압박감이 인물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의미, 어떤 상징의 프레임을 가질 수 있을지 연습실에서의 마지막 런이 돼서도 모두가 찾지 못하여, 세트를 실어 오면서도 '극장 안에서 그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면 장치를 삭제하자고 얘기해 보자'라는 마음마저 먹고 있었다. 기둥이 장면에서 존재할 충분한 당위성이나 논리를 설정하지 않고, 장면에서 수행할 약속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이 기둥이라는 장치를 끌어들여 온 것은, 논리의 영역으론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그림에 대한 직관의 영역에서 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표상이든 서사적 의미든 활용하기가 애매해서 아이디어를 던진 필자는 좌불안석.... 이었는데 장면에 어긋나지 않고 서 있는 기둥을 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들었다. '발생되는 모든 흐름은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극 개념이, 존재를 인지하기만 해도 감각적인 설득력이 생기도록 만든 것 같았다. 조화되지 않는 이질적인 외형일 수는 있어도 어설프게 존재하게끔 두지 않도록 모두가 쓰임을 생각하다 보니 내용 전반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듯하였다.
횡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기둥의 모습 또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작은 극장 안에서 꽤 큰 비중으로 점유하고 있는 면적의 기둥이, 나보다 훌쩍 큰 크기의 기둥이 인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포의 정서에 보탬이 되었다고 본다. 조금 더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이는 사회 초년생이라는 본인의 두려움(...), 무대에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여건 등으로 최선을 만들어 나가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테크닉 보완을 해줄 수 있는 인적 자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좁은 극장 공간을 검게 칠한다는 것은 답답함 두 스푼, 폐쇄감 두 스푼, 압박감 한 스푼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공간 속에 물리적인 컬러가 들어옴으로써 호흡에 방해될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합의하였기에 선택한 부분이었지만, 공연이 끝나고 보니 모두가 이 꿈 속에 갇혀있다는 의미로서 기능했다는 점에서 좋았다. 한 가지 경계하고 싶은 부분은, 텍스트를 위해 미술적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방식이, 앞으로의 활동에서 집단의 어떤 스타일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 편으론 컬러와 질감으로 채운 미장센이 집단이 만들 극 안에서 장면을 건실히 뒷받침해주는 메타포로 작동하는 모습은 어떨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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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적인 의도와 장면의 흐름은 텍스트에서, 연습으로 만들어진 배우의 말에서, 그리고 음향으로 채워진 장면의 공기에서 많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물이 향하는 이동경로, 목적,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 상당 부분 텍스트로서 밝혔으며, 인물의 발화(tts인물 포함)와 시선만 잘 따라가도 아래와 같은 형식(아래 문단 ’꿈의 이미지를 무대 위로 불러온다‘의 실현 방식 참고)의 짜임새가 자연스럽게 인지된다.

[먼저 ’꿈의 이미지를 무대 위로 불러온다‘는 점이 어떤 부분에서 실현되었는 지 서술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다른 장소로 눈 깜짝할 새에, 그러니까 인물의 의도와는 상관없지만 당연한 듯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변화한다. 꿈이라는 뇌내 속 세계에서는 물리법칙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 세계였다면 전후 장면 간 이어지지 않았을 장소 배치가 이 곳을 더욱 꿈처럼 보이게 한다. 스위치 오프하듯 공간이 사라져도 인물이 당황하거나 앞선 감정이 이어오지 않고, 장소가 변화할 때마다 그 상황에 맞게 인물의 태도가 바뀐다는 점 또한 꿈처럼 느끼게 만든다.
둘째, 특정 시간대를 건너 뛰는, 작품 안에서만 작동하는 연극적 허용의 방식(이를테면 ’1년 후 집 앞 어딘가‘, ‘2년 전 누군가가 야장 앞에서 있었던 일’ 등과 같은 지문)이 사용되지 않았다. 극이 관객이 놓여진 일련의 시간과 같이 움직이되, 금방 점프해버리는 공간에 관객이 함께 따라오게끔 유도한다.]

무대 공간 위 이미지들이 ’텍스트 속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주는가, 혹은 이 작품 형식을 어떻게 살려주게끔 보조하는가‘에 지나지 않았음이 아쉽다. 무대 위 이미지들은 말하자면 극 속 장소들과 장면 구성이 어떤 감성을 지니고 있는 지 못을 박아주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텍스트에 위배되는 약속이 생기는 순간 인물과 함께 따라갈 짜임새가 어긋나기에, 시각적 장치가 서사에 직접적인 영향이 되어 내용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전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대와 조명, 영상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이 극에서 빠졌어도, 작품 내적인 목표와 소재에 대한 표현은 어느 정도 성립하는 공연이란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본질엔 시노그래피가 없었다. 시노그래피란 이야기가 관객 앞에 발현될 공간, 즉 극장이라 칭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작품의 본질적 공간은 어느 개인이 경험했던, 기억하고 있는, 내면의 이미지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심상극을 한 것인가 묻는다면-, ’내 마음 속 감각적 영상(인상)을 관객 너희들에게 정갈하게 짜맞춰서 보여줄게‘의 일방향적 심상극이라 할 수 있겠다. ’관객이 온전히 이미지를 느낄 시간을 줘야 한다‘는 피드백을 필자 본인이 해석하기엔, (표현의 문제가 아닌) 심상이라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얕았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본다. 사이를 길게 가진다는 표현 방식은 여전히 ’극 속 인물의 상태를 천천히 관조하며 소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냈다‘에 가까웠고, 관객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영상이나 정경을 불러 일으키도록 자극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관객 스스로 상기할 수 있는 이미지를 발생시키기 위해 오직 ‘말’만이 존재하고, 나머지 영역은 모두 상상으로 채울 수 있게끔 열어두는 편이 더욱 심상극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부터는 <우. 약. 받. > 소감이 아닌 공연예술 하는 한 작업자로서 바라는 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미 머릿 속에서 그림을 모두 정리하고, 정리된 그림과 가장 유사한 걸 찾아내는 과정에 그친다면 아무리 딱 달라붙어 공간 기획을 생각한다 손 치더라도 이미 익히 해왔던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 같다.
필자 개인으로선, 배우와 공간, 그리고 관객이 관계하는 현상 그 자체를 서사로서 풀어내는 작업을 원하며, 극 바깥의 극장 공간, 무대 공간, 빛과 영상의 환경이 ’말‘과 동등한 권위를 갖길 원한다. 무대 위 모든 존재가 생하기를 바란다.
시노그래피의 활용이 인물이 놓여질 공간의 분위기 조성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영위하며 작동하는 개체였으면 한다. 현장성과 가변성으로 이루어진 무대 위 공간를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우리 팀이었으면 한다.



이화승: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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